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럽 난민 사태 (문단 편집) === 아일란 쿠르디 사건 === [[2015년]] [[9월 2일]], '''한 장의 사진이 이 사태에 다시금 큰 파장을 불러왔다.''' [[http://www.independent.co.uk/news/world/europe/aylan-kurdi-syrian-boys-family-took-deadly-voyage-after-canada-refused-refugee-application-10483968.html|주검의 사진이 모자이크 없이 게재되어 있으므로 주의.]] [[터키]] 도안통신의 29세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9/04/0200000000AKR20150904184400108.HTML?input=1195m|닐뤼페르 데미르]]가 찍은 이 사진은 아일란 쿠르디라는 3살배기 남자아이가 [[유럽]]으로 이동하던 와중에 사망하여 [[터키]] 해안가로 떠밀려온 사진이었는데 이 1장의 사진은 유럽의 여론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이에 따른 여론의 힘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입장을 선회하여 난민을 수용하게 했을 정도였다. 아일란 쿠르디는 [[쿠르드족]] [[시리아]] 난민으로, 가족 모두가 함께 유럽행 선박을 타고서 그리스로 이동 중이었다. 그러다가 지중해 한 가운데[* 정확히는 [[에게해]]다. 에게해는 항목에서 보듯이 동쪽 육지는 [[터키]]령이지만, 바다에 있는 섬들은 거의 [[그리스]]령이기 때문에 터키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난민들의 주요 코스라고 한다. 이번 사고는 터키 보드룸에서 그리스 코스 섬으로 가는 길에 일어났는데 두 지역 간의 거리는 불과 17km이며 최단거리인 보드룸 남서쪽 악야를라르(Akyarlar)에서는 불과 5km이다.]서 선박이 침몰하여 가족 중 어머니, 형, 아일란 쿠르디 본인이 사망하고 아버지만 살아남게 되었다. 죽은 형의 나이도 불과 5세였으며 이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일란 쿠르디는 전세계적으로 추모되었으며 아랍권 언론들도 아일란 쿠르디의 사망 소식에 대해 슬픔, 비극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같은 아랍인으로서 부끄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아이들의 참혹한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난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이유에서 받아들이기 곤란함을 바탕으로 거부하는 것이므로 아이의 참혹한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것은 난민 수용 찬성/반대를 막론하고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 결과 소극적이었던 일부 국가들은 적극 수용으로 선회했고 [[헝가리]]나 이탈리아 등지에 발이 묶여 있던 난민들은 [[독일]]로 이동했다. 다만 헝가리,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4개국은 난민 수용을 거부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헌데 밑에 서술하듯이 [[슬로바키아]]는 "일부 [[기독교]]인만은 받아주겠다"고 뜻을 밝혔지만 기독교인 난민도 수십여만이 넘는 상황에도[* [[시리아]] 밖으로 나온 시리아 난민이 400만 이상이다. 시리아인 인구 중 [[기독교]]인 비중은 대략 10%이거나 그보다 좀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를 적용하면 대략 이 중 40만 가량은 기독교도로 추정할 수 있다. 더욱이 기독교도들은 [[ISIL]] 아래에서 박해받을 가능성이 더 크기에, 기독교인 탈출도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난민도 늘어날 듯 하다. 그리고 시리아만 거론하였지만 [[이라크]]나 [[리비아]]에도 극소수라고 해도 적어도 몇십만의 기독교인이 있으며 이들도 난민으로 탈출하고 있다.] 수용할지 의문이었다. 한편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로 피해를 입었던 [[프랑스]] 언론 [[샤를리 엡도]]에서 만평을 통해 쿠르디의 [[고인드립|죽음을 조롱했다]]는 논란이 일어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5&aid=0000819956|기사]]. [[샤를리 엡도]] 자체가 [[기독교]]와 [[교황]]도 무자비하게 까는 편집방침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에 의한 테러 피해 당사자여서 이슬람권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고라도 도를 넘었다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http://m.huffpost.com/kr/entry/8137460|다만 이에 대해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난민 아이가 아니라 유럽의 냉혹함을 조롱했다는 해석이다.[* 예컨대 [[예수]]와 가라앉는 난민을 비교한 컷에는 '유럽이 기독교적이라는 증거'라는 문구가 떡하니 적혀 있지만 번역되지 않은 채 한국 언론에 퍼져나갔다.] 천리타향에서 외롭게 죽어 해안에 휩쓸려온 쿠르디의 시신 사진은 현대 역사 자체가 된 전설적인 사진이지만 미디어의 책임에 관해 많은 논란과 회의감을 일으킨 사진이기도 하다. 아일란 쿠르디가 외롭게 죽어서 휩쓸려온 모습을 담은 사진은 사실 경찰이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을 발견하고 수습하는 모습을 없애고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만을 남겨 의도적으로 편집한 사진이었다. 저 사진을 출판할지 말지에 대해 여러 언론사들에서 엄청난 논란이 있었고 경찰이 시신을 발견하고 수습하는 모습이 담긴 편집본도 있었으나 이 마저도 출판을 꺼렸다. 이것은 이런 사진이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에''' 출판 시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도안통신이 데미르의 사진 편집본 중에서도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만 나온 편집본을 수용해 출판한 것. 난민 사태가 소강 상태에 들어서고 나서는 이 사진의 가장 과격한 편집본을 출판한 것에 대해 굉장한 비판이 있었고 '''실제로 지금은 언론 기사들 중에 아일란 쿠르디만 단독으로 있는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항목에 달린 링크에도 경찰이 시신을 발견하는 모습이 단긴 편집본으로 대체되었다. 게다가 쿠르디의 아버지가 [[http://www.skynews.com.au/news/top-stories/2015/09/11/claims-alan-kurdi-s-father-a-people-smuggler.html|이 선박의 선장이었다는 증언이 있다.]] 증인의 주장에 따르면 구명조끼도 부족하고 사람이 꽉 찬 배를 마구잡이로 몰아댔다고 한다. 게다가 같은 주장을 한 사람이 또 나왔다. 때문에 진실공방으로 번지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07854802|#]]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은 전설적 사진이란 평가와 함께 [[베트남 전쟁]]의 [[구정 공세]] 중 마을을 습격한 [[베트콩]]을 [[즉결처분]]하는 경찰서장을 촬영한 사진 처럼 사건을 왜곡시켜 버린 비윤리적 출판이었다는 평이 같이 나왔다.[* 해당 사건은 전범을 처단하는 장면이었지만 역으로 처단한 경찰이 전범으로 몰리는 사태가 발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